한동안은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다가,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가장 처음 보았던 드라마가 최근 유행하는 '선재 업고 튀어'였다. 풋풋한 첫사랑을 담은 전형적인 드라마였는데, 오히려 그래서 모두의 청춘을 보여준 드라마이기에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임솔과 류선재로, 류선재는 임솔이 좋아하는 밴드 '이클립스'의 메인 보컬이다. 임솔은 고등학교때 교통사고로 인해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었으나, 이클립스 류선재로 인해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류선재의 팬이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임솔과 류선재가 처음 만난 날 류선재는 수영장으로 뛰어들어 죽게 되고, 임솔은 류선재의 시계를 매개로 삼아 둘이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던 과거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임솔은 류선재를 살리려 애쓰지만, 미래는 순순히 바뀌지 않았다. 처음으로 임솔이 미래를 바꾸자, 다시 임솔은 현재로 돌아오고 시계에는 2라는 숫자만이 남아있다. 그렇게 임솔은 2번째 타임슬립으로 류선재를 살리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류선재와 임솔은 그 과정에서 사랑에 빠지게 되고, 또다시 류선재는 임솔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마지막 타임슬립에서, 임솔은 자신을 위해 죽는 류선재를 막기 위해 류선재와의 첫만남을 아예 없었던 일로 만든다. 임솔은 자신만이 기억하는 사랑을 마음 속에 담은 채로, 그를 애써 밀어내며 힘들어한다. 하지만 기억은 머리에 남는게 아니라 마음에 남는 것이기에, 류선재는 다시 임솔을 기억해내 해피엔딩으로 드라마가 마무리된다. 이터널 선샤인과 굉장히 비슷한 결말이다.
어찌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별거 없는 스토리다. 타임슬립이라는 소재 자체도 흔하지 않고, 주인공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이런 소재의 드라마를 찾곤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과거에 후회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후회되는 행동을 하고 나서 우리는 늘 생각한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렇게 할텐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가하자면, 나는 예전부터 미래로 가는 초능력과 과거로 가는 초능력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질문에 늘 후자를 택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래로만 나아가는 중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나의 행동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시험 문제들의 답을 다 아니까, 시험을 다시 친다거나, 로또번호를 외우고 가서 1등을 노려본다는 단순한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고, 예전에 친하게 지냈었던 친구들도 생각이 난다. 마지막 순서는 뻔하게도 연애였다.
2년 전 내가 작성했었던, 이터널 선샤인과 관련된 에세이에서 나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한다'라는 답을 내놓았었다. 이번 에세이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인 듯하다. 다만, 새롭게 하게 되었던 생각은 '우리는 앞으로 가지 못하니까 현실에 충실히 살 것.' 이다.
과거를 그리워한다고 해서 과거로 우리가 다시 갈 수 있을까? 선재의 시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다시 과거로 간다면 후회할 행동은 하지 않을 수 있을거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후회할 일이 완전히 없어질까? 내가 과거를 바꿈으로써, '내가 알고 있는 미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로 변해버린다. 다시 우리는 '새로운 후회'를 만들고, 다시 과거를 바꾸면 또다른 후회를 만들기만 할 뿐이다. 과거를 바꾸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어진 순간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래서 난 요즘 과거로 가는 초능력보다 미래로 가는 초능력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래도 만약에 딱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애와의 추억을 마무리짓는 일일 듯 하다.
마지막을 조금만 더 아름답게 마무리했으면 좋았을텐데, 마지막에 서로 얼굴을 보며 마무리했으면 덜 힘들었을 텐데.

'기억의 한 조각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monologue #7] '무의미'와 '유의미'는 한 획 차이임을 (0) | 2024.11.26 |
|---|---|
| [monologue #6] 뒤처지는 것은, 나를 돌보는 시간이 생긴다는 것 (6) | 2024.09.01 |
| [monologue #4] 닿지 못할 편지 (0) | 2024.08.05 |
| [monologue #3] 대학 입시를 앞두고_너에게 가는 길 (1) | 2024.08.05 |
| [monologue #2] 끝을 알지만 끝낼 수 없는 것들 (2) | 2024.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