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

나는 늘 자유로운 삶을 원했지만 막상 그 자유로움이 내 하루를 가득 채울 때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혼자 붕 뜬 것만 같아서.

기억의 한 조각/혜윰

'스며들다'의 정의

se._.os25 2024. 8. 1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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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어느 여름,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하늘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닿지 못할 어둠뿐이었고,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이곳에 남아있는 건 조용한듯 세상을 두드리는 빗소리 뿐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비가 싫어진건.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았다.

그래서 비가 오면 나는 노래를 들었다. 엄마한테서 받은 소니 헤드셋을 끼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도서관에 가 눈을 감고 시끄러운 음악을 하염없이 틀고만 있었다.

그리고 항상 내 옆자리에는 그 애가 있었다. 그 애는 항상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하나하나 넘기며,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채로 무언가를 계속 쓰기만 했다. 비오는 날이면 나와 그 애는 계속 그렇게 서로를 배경삼아, 서로의 배경이 되어 하염없이 머물렀다.

 

비가 그친 뒤에는 늘 맑은 해가 뜨곤 한다.

해와 함께 무지개가 우리를 비추는 날, 도서관에서 나는 어느샌가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언제쯤 다시 비가 올까?'

이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집에 가려고 걸음을 뗀지 얼마 지나자마자 곧바로 여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왜인지 모르게 가볍기만 했고,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물을 털고 다시 그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네, 항상 그 애가 나보다 먼저 왔었는데.

 

친구들은 내게 물어왔다. 그 애를 왜 신경쓰는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도서관을 떠올리면 그 속엔 늘 그 애가 있었다.

매일매일 똑같은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였던 것처럼.

 

용기를 내어 그 애가 항상 앉던 내 옆자리에 앉아보았다.

평소와 똑같은데, 달라진 것은 내 자리뿐이었다. 그런데도 낯설었다. 무엇인가가 잘못된 느낌이었다.

문득 불안해져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결국 그 애는 오지 않았다.

 

매일 매일을 도서관에 갔다.

혹시나 그 애가 왔을까봐 초조했다.

하지만,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라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볼 걸, 하는 후회였다.

 

첫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비를 기다렸다.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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