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21 작성
프란츠 카프카 - 변신

벌레, 그중에서도 바퀴벌레 같은 곤충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혐오의 대상이다. 만약, 내가 벌레로 ‘변신’한다면 우리 가족들은 나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그리고, 작가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 글을 썼던 걸까.
먼저,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변신’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변신’은 물리적, 감정적, 사회적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이 책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물리적인 변신의 의미. 그레고르의 겉모습이 사람에서 벌레로 변함을 뜻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을 때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사회적인 측면의 ‘변신’을 강조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그레고르는 원래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던 외판원이었지만, 벌레가 되면서 일을 전혀 하지 못하고 밥만 축내는 집안의 애물단지 그 이하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사회적으로의 자신의 신분을 잃어버리고 추락한 것이다. 가족들은 이렇게 사회적 측면에서의 ‘변신’을 겪은 그레고르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과, 자신이 생계를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감(그레고르가 원래 안고 있었던)을 갖고 일을 나가게 된다. 이는 마치, 모종의 이유로 사회적 신분을 잃게 되는 현실의 수많은 그레고르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사회의 많은 그레고르를 부양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는 걸까?(나는 이 주제로 토론을 해보고 싶었는데, 너무 찬반이 많이 나뉘는 주제라 실제로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사실 토론 전, 나는 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아니 부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좋든 싫든 그 사람은 자신의 가족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것이 가족들에겐 힘든 일로 다가올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시키지 않아도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돌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 속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달랐다. 물론 처음에는 여느 가족들처럼 그레고르를 돌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레고르가 다시 ‘변신’할 것이라는 희망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더 이상 그레고르를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레고르가 죽고 나서는, 오히려 가족들은 다시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가며, 희망을 갖는 모습이 드러났다. 무척 모순적이다. 그레고르가 외판원으로 일할 때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없는 자신들의 삶을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그레고르가 없을 때 자신들의 삶을 보다 더 희망적으로 바라본다. 우리는 여기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단편적(또는 극단적)으로 바라본다면, 그레고르와 같은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부양의 필요성을 수면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죽기 전,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에 죄책감과 우울감 속에 빠져 지내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우리를 위해서라도 그레고르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살짝 억지이려나.
토론 과정에서, 우리는 ‘변신’이 던지는 또 하나의 물음을 찾을 수 있었다. 아래는 그레고르의 죽음은 자기 가족의 탓보다 스스로의 탓이 더 크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나왔던 발언이다. “그레고르는 액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는 생각도 안 한 채로 기어나와 어머니를 기절시켰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은 채로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한 그레고르는, 어쩌면 사과를 맞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발언에 따르면, 그레고르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의 감정조차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마음 아픈 점은, 그레고르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정당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벌레’라는 존재로 변했다는 이유로 이러한 차별은 당연시되고 있으며, 우리에겐 이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애초에, 그레고르가 저렇게 차별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우리는 그동안 이 책을 완전히 잘못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흔히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족의 부양에 대한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레고르를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고 있었던 우리 스스로에 대한 질타 역시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이러한 효과를 위해 카프카는 변신의 대상을 벌레로 설정해둔 게 아닐까.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지만, 가족들이 자신을 포기할 것이란 내용을 듣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가족들에게는 그레고르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지만, 그레고르에겐 정말 가족들뿐이다. ‘변신’은 자신의 전부가 자신을 버리는 참담한 일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우리를 꼬집는 실존주의적 작품이 아닐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 <변신>에 대해서는 해야 하는 말,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아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적다 보니 약간 내용이 뒤죽박죽된 것 같은데,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생각공책의 의미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을 정리해보는 노트, 그것으로써 생각공책은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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