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23.
소포클레스 - 오이디푸스 왕

나는 운명론자이다. 최근 오이디푸스왕 토론 이후 깨달은 사실이다. ‘오이디푸스왕은 자신이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논제로 진행한 토론에서, 찬성측에 있었던 친구에게 질문을 하나 했었다. ‘그렇다면 토론자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이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자신의 자유의지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말이 되지 않나요.’ 우습게도, 이 질문을 하면서 나는 ‘나 역시 대부분의 일들이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는 운명론자의 의미는 단순히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우연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바로 운명론자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현재 열심히 공부하고, 내 생각을 쓰고 있는 이 상황 자체가 원래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진, 운명에 의해 계획된 상황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일상생활 속에서, 살아가면서 해보기란 정말 쉽지 않다. 나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내가 운명론자라는 것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이디푸스왕은 ‘운명과 자유의지’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우리에게 이것을 생각해보도록 명령한다(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오이디푸스왕은 항상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스핑크스의 문제를 풂으로써 이성에서의 진실을 추구했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본질에서의 진실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모습이, 결국은 오이디푸스가 운명을 정면에서 맞닥뜨리도록 하는 폭탄의 발화가 되어버렸다. 아폴론 신이 내렸던 신탁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운명을 극복하는데 실패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결국은 운명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보면, 아폴론 신은 오이디푸스, 라이오스, 이오카스테가 신탁을 듣고 이 신탁을 피하는 것까지 예상했고, 신이 예상한 일을 그대로 사람들이 행했기 때문에 신탁이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토론 내내 나는 오이디푸스가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그 테두리의 범위를 생각해보려 했다. 만약 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가, 라이오스가 신탁을 받지 않았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쩌면 오이디푸스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눈을 찔러 운명에 반항하는 것밖에 없지 않았을까. 우리 역시 오이디푸스와 같은 신의 영향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의 노력을 통해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을 예시로 들며 ‘노력하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이 말을 하는 사람 중에서는 실제로 자신이 노력에 따른 성취를 경험해 본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서 막연히 말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운명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노력해서 성공할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미 성공할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성공을 위해 발버둥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우리는 오이디푸스와 우리의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신탁’의 존재 여부이다. 오이디푸스와 그의 부모는 오이디푸스의 미래에 대한 신탁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정해져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신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노력했을 때 실제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가능성을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도약은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운명론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진다.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관찰해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운명은 무엇일까. 신은 존재할까.
'배움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study #10] 달밤: 문학적 분석 (2) | 2024.09.05 |
|---|---|
| [study #9] 블레이드 러너: 레이첼이 데커드를 사랑했던 것은 진심이었을까 (0) | 2024.09.05 |
| [study #7] 이터널 선샤인: 메리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 (0) | 2024.09.05 |
| [study #6] 별주부전: 토론, 그리고 작가의 의도 (0) | 2024.09.05 |
| [study #5] 변신: 현실의 수많은 그레고르 (0) | 2024.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