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23.
리들리 스콧 - 블레이드 러너

살면서 봤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그 얼마 안 되는 영화들 중 하나이다. 블레이드 러너가 등장하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세계관 자체도 기억에 남았었지만, 블레이드 러너만의 독특한 특징인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레플리칸트들의 이야기가 내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계기는 바로 이진경의 <복제인간과 안티-오이디푸스>라는 글이었다. 이 글을 지은 이진경은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과 레플리칸트와의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어쩌면 그들이 ‘사람보다 더 사람답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다움’이 무엇인지를 의심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욕망’에 의해 움직였다. 레플리칸트들은 더 살고자 하는 욕망을 원인으로 하였고, 주인공인 데커드는 레이첼과의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에 의해 ‘표상체계’를 벗어나게 된다. 또한, 데커드와 로이의 마지막 결전 장면은 로이에 의해 죽을 뻔하게 되고, 로이에 의해 목숨을 지키게 되는 인간의 무능함을 대놓고 비난하고 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평소 내가 복제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했던 토론은, 이러한 측면에서 내게 많은 도움을 제공했다. 토론을 한 것이 무척 오래되어 정확한 논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가 꼭 토론해보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는데, 이 글에서는 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그 주제는 바로, ‘레이첼이 데커드를 사랑했던 것은 진심이었을까?’라는 주제였다. 사실 영화 내용 중, 데커드가 레이첼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라고 소리치자 레이첼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레이첼이 진심으로 데커드를 사랑한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진경의 글 속에서는 그러한 행동으로써 그녀는 표상체계를 벗어난 것이고, 이는 레이첼의 진심과 욕망 때문이라 말하고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레이첼은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선택지만이 자신에게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데커드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들이 자신을 쫓고 있는 상황에서, 레이첼은 원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이탈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과연 그녀가 할 수 있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또 다른 블레이드 러너인 데커드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데커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토론을 했더라면 반박이 어떻게 들어올지 정말 궁금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 다만 레플리칸트의 아래에 항상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레플리칸트도 하나의 생명이기에, 인간과 똑같은 방법들을 통해 인간과의 수직관계를 생성하는 것이다.
아직은 이러한 미래가 현실화되지 않아 실감이 잘 나지는 않지만,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양상을 보면 레플리칸트가 내 옆에서 걸어다니는 그러한 미래가, 아주 멀리 있지는 않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그날이 정말 온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관련 링크_이진경의 <복제인간과 안티-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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