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

나는 늘 자유로운 삶을 원했지만 막상 그 자유로움이 내 하루를 가득 채울 때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혼자 붕 뜬 것만 같아서.

배움/문학

[study #11] 이터널 선샤인 분석해보기

se._.os25 2024. 9. 5.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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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8. 28

「이터널 선샤인」모둠 발표문

이 자리를 빌려, 글을 함께 써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1. 간추리기

잠에서 깬 주인공 조엘, 평소 진중한 성격의 조엘은 회사로 가는 대신 갑자기 몬톡행 열차를 타게 된다. 몬톡의 바다에 도착한 조엘은 그곳에서 기분에 따라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충동적인 여자 클레멘타인을 만나게 되고, 서로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게 된다. 둘은 함께 얼어붙은 찰스강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클레멘타인의 집에 잠시 들렸고, 조엘의 집에 가기로 한다. 시점이 과거로 돌아간다. 조엘이 친구의 파티에 가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클레멘타인을 처음 보게 된다. 그때부터 사랑에 빠져 오랫동안 사랑을 쌓아가다, 생기 없는 커플이 되어버렸고, 말싸움의 반복으로 쌓인 짜증이 선을 넘는 행동으로 표출되어,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곧 발렌타인 데이 전날이 되었고, 조엘은 화해를 위해 목걸이를 사서 클레멘타인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조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그녀의 옆에는 패트릭이라는 새로운 남자친구가 있었다. 곧이어 조엘은 라쿠나라는 회사에서 클레멘타인이 조엘과 관련된 기억을 모두 지웠다는 것을 알게 되고,(패트릭은 라쿠나의 직원으로, 클라멘타인의 기억을 지운 뒤 데이트를 신청하여 연애를 시작했었다) 자신 역시 클레멘타인에 관한 기억을 모두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을 지우는 일을 담당하는 하워드 박사는 조엘에게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물건들을 모두 모아 머릿속에서 기억 지도를 만들고, 그날 밤 그의 집에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모두 지워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이는 말,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차례로 지워질 겁니다.” 조엘의 기억을 지우기 시작한 직후, 패트릭이 기억을 지우는 조엘의 곁에서 스탠에게 클레멘타인을 뺏었다고 고백한다. 조엘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엘의 기억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영화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하나씩 보여준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조엘이 클레멘타인에게 “또 다른 남자들이랑 잤겠지. 너는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니까.”라고 말하고 클레멘타인과 헤어지는 장면, 식당에서 밥을 먹는 흔한 연인들이 되어버린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모습 등을 차례로 보여주며 조엘의 기억은 점점 지워져 간다. 기억을 지우던 중,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찰스강에서 함께했던 기억에 다다른다. “지금 죽어도 좋아, 클렘. 난 그냥 행복하네. 이렇게 행복한 적 처음이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거야.” 그 순간에 조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고, 기억을 지우기로 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자신의 선택을 되돌리기 위해 조엘은 기억 속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도망친다. 클레멘타인이 없었던 기억, 가장 창피했던 기억으로 도망치던 조엘은 하워드에 의해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온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조엘은 어떻게 할지를 묻는 클레멘타인에게 대답한다. “Enjoy it.” 그 시각, 메리는 기억을 지우기 위해 조엘의 집에 찾아온 하워드 박사에게 니체의 명언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기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알렉산더 포프의 시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 의 한 구절을 읊으며, 사랑을 나눈다. 그러다 하워드 박사의 부인에게 이를 들키게 되었고, 과거에 하워드 박사와 메리가 사랑에 빠졌었으나 메리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잊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지웠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메리는 이를 알게 되고 회사에서 나오며, 기억을 지운 사람들이 남겼던 기록을 환자들에게 모두 보내준다. 한편, 기억 속에서 도망치던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어느덧 그들이 처음 만났던,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어 주는 장소인 몬톡의 해변까지 다다른다.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고,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따라 빈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조엘은 실제 과거에 있 었던 일과 다르게, 빈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빈 집으로 들어와 클레멘타인의 곁으로 오는 선택을 한다. 조엘은 빈집, 즉 클레멘타인과의 추억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클라멘타인에게 다시 돌아오는 선택을 함으로써 비록 기억 속이지만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는다. “안녕 조엘. 사랑해. 몬톡에서 만나”라는 클레멘타인의 이 말을 마지막으로,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다시 첫 장면, 조엘은 알 수 없 는 이끌림에 의해 몬톡행 열차에 몸을 싣고, 다시 클레멘타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음 날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라쿠나에서 온 우편물을 통해 과거 자신들이 이미 사랑에 빠졌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함께 온 테이프의, 기억을 잃기 전 서로에 대해 말했던 이야기에 다시 상처를 받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서로에게 말해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2. 소설 바깥

 미셸은 자신만의 독특한 아날로그적 영상 연출 기법을 사용하여 꿈의 세계를 영상에 담아낸다. 그는 특히 여러 판타지 로맨스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사랑을 표현했다. 또한 미셸은 실용적인 효과와 수제 소품을 사용하여 은막 위에 초현실적이고 매혹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독특한 창의성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조엘의 기억이 삭제되는 과정을 건축물의 파괴로 표현한 연출에서는 감독의 무한한 창의성이 엿볼 수 있다. 미셸 공드리가 <이터널 선샤인>에서 ‘기억’을 소재로 사랑의 세계를 펼쳤다면, <수면의 과학>에서는 ‘꿈’을 소재로 사랑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수면의 과학>에서 감독은 꿈속의 배경과 물건들을 골판지와 솜 등으로 연출해 ‘스테판의 꿈’이라는 가상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창의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영화 제작에 대한 강한 열정과 끝없는 모험에 대한 갈증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찰리 카우프만은 독특하고 초현실적인 스토리텔링 스타일로 유명한 미국의 각본가이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은 지적 깊이를 요구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서술 구조를 가진다. 그의 다른 영화인 <존 말코비치 되기>는 독특한 전제를 가지고 인간의 욕망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도 종종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에 도전하는 그만의 독특한 서사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영화 매체의 한계를 깨려는 그의 욕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물음과 대답, 그리고 논의 거리와 주제

1) 클레멘타인의 머리카락과 복선의 상관성

A: 기차에서 “머리카락 색에 따라 기분이 바뀐다” 고 클레멘타인이 흘러가듯이 말하는 부분이 있었어. 머리카락 색의 순서가 초록, 빨강, 주황, 파랑이니까, 그 당시에 클레멘타인이 느끼던 자신의 감정을 뜻하는 게 아닐까?

B: 맞는 것 같아. 약간 계절 같기도 하네.

C: 첫 부분 사진을 보니까 파란색이 옅어지고 있는 게 초록색 같기도 한데? 마치 식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라는 새로운 사랑이 오는 것 같아.

D: 미셸(각본가)이 머리카락 색에 따라 기분이 달라진다고 했잖아. 그런 부분에서 보면 사랑의 전개과정을 머리카락이 보여주는 것 같아.

2) 기억을 삭제한 뒤에도 하워드와 메리, 클레멘타인과 조엘이 다시 사랑하게 된 이유

C: 사랑은 자신의 성향, 특성, 유전자적 DNA에 의해 정해지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이 사람을 보고 과거에 사랑에 빠졌으면, 기억을 지워도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지. 난 그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D: 육체가 감정을 지배하는 도구이다... 육체가 감정과 이성을 지배한다....

C: ㅋㅋㅋ 피곤하구나. 육체가 감정과 이성을 지배하니까 육체에게 감정은 도구다. 그런 말인 것 같아.

E: 방금 니체의 말에 대해 얘기해서 그런지 니체의 해석 같다는 느낌이 드네. 성우의 말은 신체적인 것을 강조했던 니체에 가까운 것 같아. 유물론적 해석인 거지.

A: 맞아. 지난번에 우리가 읽었던 오이디푸스 내용에서 프로이트나 라캉의 해석보다는 들뢰즈나 니체에 가까운 것, 그러니까 ‘정신’은 ‘신체’에 의존한다는 것 같아.

C: 육체가 이성을 지배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이성의 기억을 지웠는데도 신체가 기억을 하고 있잖아.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지웠음에도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행동해. 과거 조엘과 같이 갔던 찰스강을 방문하거나 몬톡에 가고 싶다고 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조엘도 역시 기억 속에서 떠올렸던 몬톡을 기억이 지워진 후에도 뛰쳐나가는 걸 보면 이렇게 추측할 수 있는 것 같아.

B: 맞아. 솔직히 처음 생각했을 땐 ‘몬톡에서 만나자’라는 말을 듣고 몬톡으로 뛰쳐나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 ‘결국 이것도 기억이고, 지워졌을 텐데 어떻게 만나자는 거지?’ 하지만 네 말을 들어보니까, 몸이 기억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던 기억을 이성이 기억하지 못해도 몸이 그때의 감정과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거지.

3) 메리가 말했던 니체의 명언속 망각과 「이터널 선샤인」의 ‘망각’ 의미의 차이

B: 영화에서 메리가 하워드 박사에게 니체의 명언을 인용하잖아. “망각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이 부분이 나에겐 엄청나게 감동을 주었거든. 이건 어떤 의미인 것 같아?

A: 하워드 박사에게 고백하기 전 메리는 이 말을 진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거야. 망각이 복이라고 단순히 해석한 거지. 그런데 메리가 자신이 과거에 기억을 지웠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망각은 사실 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거 같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메리는 니체의 망각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게 아닐까.

E: 나는 조금 다른 느낌이야. 니체가 말했던 망각을 잘못 이해했다기보다는 이중적인 의미, 그러니까 망각을 통해서 어린아이처럼 행복하게 살 건지, 아니면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할 건지를 묻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 메리는 과거에는 망각을 통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좋은 것이라고 판단했던 거고, 이제는 고통을 감수하고 성장하게 된거지.

B: 나는 A의 말이 더 맞는 것 같은데... 개인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까.

C: 니체의 망각은 완전히 기억을 잊는 망각인 것 같아. 기억을 완전히 지우라는 게 아니라 현재의 일이 아닌 과거의 일에 너무 집착하면 안된다는 말인 것 같아.

D: 기억 속에서 조엘의 완전 과거의 기억에서 클레멘타인이 “이제 어떻게 하지?”라고 말하는데 조엘이 “이 순간을 즐기자.” 라고 말하는 것도 니체의 관점과 일치하는 것 같아. Enjoy it! 감동적이야!

E: ㅋㅋㅋㅋㅋㅋ 니체는 '영원회귀'를 받아들이고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었어. 또한, 반복되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아모르파티’를 말한 것도 니체지. 결국 감독은 '영원회귀'의 개념을 활용하여 이터널 선샤인. 즉, '영원한 햇살'이 아닌 '내가 받아들이는 오늘의 햇살‘이 더 중요함을 나타내.

B: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마지막 장면도 그런 내용이야. 지금의 사랑에 충실하자. 감독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4) 만약 내가 조엘이나 클레멘타인이라면, 사랑의 결말이 비극적인 것을 알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할까?

C: 난 안 할 것 같아. 어차피 헤어질 건데, 둘이 상처받을 걸 아는데도 그래야 할까?

E: 영화 ‘콘택트’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주인공은 ‘사랑’을 택해. 비극적인 걸 알아도,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한다면 다시 사랑할 것 같은데?

D: 난 C랑 똑같은데. 이 사람이 아니어도 나에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서 새로운 사랑에 빠질 텐데 굳이 다시 상처를 받으며 반복해야 할까?

A: 나는 사랑할 것 같아. 어떻게 되었든 비극적인 결말 전까지는 우리가 사랑한 거잖아. 사랑했을 때의 행복했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다시 사랑할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사랑은 어차피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의 운명이기도 하니까.

5) 시의 마지막 구절이 제목으로 들어간 이유와 그 의미는 무엇일까?

흠 없는 처녀 사제의 운명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은 그녀를 잊고, 그녀는 세상을 잊어가네.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빛(Eternal Sunshine)! 모든 기도는 받아들이고, 모든 소망은 내려놓는구나.
-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 알렉산더 포프의 시 中에서-

 

E: 그리고, 시의 마지막 부분이 이런 내용이래. 괴로움을 가장 크게 느끼는 자, 괴로움을 가장 잘 그리리라. 시의 끝까지 다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데, 제목인 ‘이터널 선샤인’과 메리의 말은 어쩌면 시의 결론을 암시하는 걸지도 몰라. ‘사랑이라는 건 선택한 순간 고통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것 말이야.

C: 이거 아까 네가 말했던 이중적인 의미인가? ‘사랑을 모르고 살 것인지, 고통을 느끼더라도 사랑하고 살 것인지?’

E: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처럼 말이지?

A: 맞아. 영화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고통을 느끼는 걸 선택한거고.

D: 메리는 어때? 메리에게 있어서 이건 비극적인 결말이잖아. 그녀는 고통을 모르고 살 때가 더 행복했을 테니까 말이야.

B: 그런가? 메리의 이야기가 배드엔딩은 아니라고 생각해. 메리가 ‘라쿠나’사에서 기억 편집을 한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반송한 건 무언가 깨달음이 있어서잖아. 단순히 배드엔딩이라고 하기엔 조금 곤란한데. (토론을 통해 더 자세히 의견을 나누어보기로 하였다.)

6) 인상 깊었던 부분

C: 마지막의 “Ok” 부분 아닐까? 클레멘타인이 결국 비극적인 결말일 것임을 얘기하는데, 조엘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괜찮다고 답해. 마치 그런 건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하지도 않다는 듯 말이야. 당신을 위해 앞으로 벌어질 고통을 받아들이겠다는. 그 고통까지도 사랑하겠다는 조엘이 너무 멋있었고, 대답을 듣고 함께 울면서 동시에 웃는 장면이 뭉클했어.

A: 마지막의 기억 속에서 조엘이 집에 가다가 돌아오잖아. 원래 그랬던 것과 달리 말이야. 과거의 기억 속 수없이 많은 후회를 바탕으로 바로잡을 수 없는 현재를 바로잡고자 발버둥 치는 모습이 너무 슬펐어. 그때 니체의 ‘망각은 복’이라는 문장이 다시금 떠올려졌기도 했고. 추가로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기억을 지우는 조엘을 놔두고 열심히 노는 메리와 스탠을 비추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감독이 약간 기억을 멸시하는 인간을 비판하기 위해 넣어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E: 나는 조금 단순한 장면이었는데. 어려진 조엘 장면에서 클레멘타인이 ‘드레스가 내 스타일인데’ 라고 말하는 거라던가, 패트릭이 준 조엘의 선물이 너무 내 스타일이고 마음에 든다는 클레멘타인의 말을 통해서 비록 조엘이 클레멘타인과 헤어진 상태지만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직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조엘의 심정을 알 수 있었어.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챙겨주었던 조엘의 모습이 얼마나 연인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조엘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D: 난 Enjoy it 이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아. 점점 잊혀져가는 클레멘타인과의 기억 속에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충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조엘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어. 그 부분이 나에겐 안타깝고 슬프게 다가왔던 것 같아.

B: 난 아무리 생각해도 조엘이 기록을 지우고, 잠에서 깬 뒤 한시라도 빨리 몬톡으로 가기 위한 그의 행동을 보며 느낀 전율을 잊을 수 없어. 사랑을 하는 사람의 정신과 신체에, 사랑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다시금 실감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객관적으로 도대체 뭔지, 과학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파악하고 싶어졌어.

 

토의를 통해 생각해 본 「이터널 선샤인」의 주제: 인간의 성장에 있어 기억의 선택과 망각은 필요하다.

 

4. 세상과 연관

이터널 선샤인 영화를 보면 주인공 조엘뿐만 아니라 클레멘타인, 메리 등의 인물들이 특정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 라쿠나 회사를 찾아간다. 이렇게 기억의 특정 부분만 삭제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은 그 인물들의 삶을 바꾸어 놨다. 현실에서도 이러한 처리가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슬프거나 괴로운 기억만을 선택적으로 지운다는 기술은 사실 공상 영화 내지는 소설에서나 다루는 주제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것이 현실화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연구팀에서는 단백질 효소를 통해 기억 분자의 활동을 화학적-유도적으로 조작해 목표 기억을 선택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리고 Science 지에 특정 시냅스가 학습 시에 새롭게 합성된 AMPA라는 단백질 수용체를 불러 모아 기억을 생성한다는 논문이 발표됐고, 기억의 유지와 소멸의 기전인 기억의 재구성 과정을 밝히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이러한 결과들은 치매, 기억 상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의 질환을 규명하고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나쁜 기억을 지우는 것은 인간의 바람이지만, 이것은 몇 가지 윤리적 문제가 따라온다. 첫째, 진실성의 문제가 생긴다. 고통스럽고 시련을 겪었던 경험이라도 그것으로부터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고, 그러므로 이러한 기회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기억 보존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생각해야 한다. 기억이라는 것은 꼭 자기 자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자기 자신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기억을 삭제시킨다는 것이 그것을 공유하고 있던 다른 사람에게 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자율성의 문제가 있다. 약물의 사용은 약물에 대한 의존심을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자율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처치를 누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마지막, 개인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 기억을 지우기 전 시점과 지우고 난 후의 시점 사이에 존재해야 할 개인의 정체성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특정 기억만 지운다는 행위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나, 이는 여전히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남기고 있다. 나쁜 기억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지우고 싶을지 몰라도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이 기억에 들어가 느꼈던 것처럼, 메리가 나중에 기억 상실의 사실을 깨닫고 느꼈던 감정처럼, 그 아프고 시린 기억 속에서도 행복하고 설레거나 다시 회상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을까? 니체의 생각처럼, 과거의 실수나 아픔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참조: [나쁜 기억 지우려다가, 나를 지운다면...] -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8018

 

5. 참고문헌

1) 김승진.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대한 정신분석적 고찰.” 국내석사학위논문 한신대학교 정신분석대학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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