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6. 23.
미셸 공드리 - 이터널 선샤인
에세이의 초안

처음 내가 이터널 선샤인을 토론할 작품으로 선택했을 때 이터널 선샤인이라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는,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모르는 채로 밝은 햇살 아래에서 활짝 웃고 있는 한 소녀였다. 보기만 해도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현재, 영화 감상을 끝내고 토론으로써 생각 정리까지 마친 내 머릿속에 머무는 햇살 머금은 이 소녀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눈물을 흘리며 활짝 웃고 있다. 여전히 자신을 비추고 있는 햇살 아래에서 말이다.
내가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고 싶은 인물은, 토론을 준비하며 내가 가장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라쿠나사의 ‘메리’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메리는 이 영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비춰지는 클레멘타인과 조엘의 이야기에 집중해, 메리, 하워드 박사, 패트릭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메리가 클레멘타인과 조엘에게 지워진 기억을 보내줌으로써, 이 영화는 비로소 결말에 도달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기억을 지우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메리가 우리에게 주는 이 질문을 조원들과 꼭 이야기해보고 싶어 토론 논제를 ‘메리가 기억삭제자들에게 기록을 보내준 것은 잘못되었다’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먼저 내고, 토론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메리의 입장에 공감하며 이해해보는 것을 초점으로 두었다. 영화 속에서 메리는 하워드 박사와 다시 사랑에 빠짐으로써 기억 삭제의 이면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인간의 정신을 사실 육체가 지배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아마도 메리는 이 사실을 깨우쳐 줌과 함께,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진실을 직시하고 바로잡을 기회를 준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흥미로웠던 점은,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들 중 한 명은 메리가 우편을 보낸 이유로 ‘기억은 발전을 위한 발판이다’를 꼽았다. 메리가 말했던 니체의 명언인 ‘망각한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망각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정말 자신의 실수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친구는 과거를 바탕으로, 자신을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메리의 행동이 꼭 필요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토론을 진행할 때는, 메리가 우편을 보낸 이유에 대해 논쟁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지우는 것에 대한 윤리적 판단에 완전히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었다. 그러나 이 토론 논제는 기억 삭제에 대한 윤리적 판단 역시 비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한 토론이 의미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론을 통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상대방이 짚어주어 내게끔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다만, 토론 시간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메리의 기억 삭제 이유가 타당한가’에 대한 토론이 더 많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있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 머릿속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는 자신에게 일어날 미래를 모두 깨달았음에도 여전히 웃고 있다. 이 소녀는 아마 메리가 아닐까? 유난히 철없는 모습으로 등장했었던 금발 머리 소녀는, 하워드 박사와 사랑에 빠져 기억을 지웠음에도 다시 자신의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나 두 번째에는 ‘기억을 지웠다는 기억’(비록 얻은 기억이긴 하지만)을 바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신의 실수, 사람들의 실수를 바로잡는다. 한 뼘 더 성장한 그녀는, 이제야 비로소 웃으며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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