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마음편하게 방에서 글을 써내려가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인 듯하다. 그동안 입시를 치르고,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느라 글을 쓸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내 본질이 글인 탓인지, 그토록 원하던 대학의 거리를 거닐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한편으로 계속 맴돌았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실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내가 이렇게 여유롭고 행복해도 되는걸까'다. 고등학교 때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었다. 그러다가 3개월을 죄책감 없이 쭉 놀고, 개강을 맞이했지만 3개월 전처럼 빡세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여유롭게 공부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적응이 잘 안된다. 매일매일 할 일이 넘쳐났었던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바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는지도 모르겠을 만큼 느긋하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 오는 불안감이 요즘 나를 조금씩 물들이는 중이다. 가장 이상한 건, 이 여유를 즐기면서 마음 속으로 계속 불안함을 품고 있다는 거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할 지도 잘 모르겠기에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기만 하는. 흔히 20살을 비유하는 모습 그대로, 사회에 막 나와 내가 잘 해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병아리. 딱 그런 상황이다.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당장 내일 무엇을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은 전혀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그냥 단지 생각이 많은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듯하다. 선배들, 동기들 모두가 아무런 걱정없이 행복하게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만 그래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청춘', 모든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시기.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의 내 청춘을 대학에 입학하는 이 순간만을 위해 써왔다. 누군가 나의 19살을 물어본다면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밤새워 공부하던, 덕분에 후회가 없었던 시절'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대학가면 다 끝난다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말할 때, 나는 나 혼자 그 말을 꿋꿋하게 믿어가며 공부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에 들어오고 나니, 무얼 해야할지 더 이상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과학고등학교라는 목표, 그리고 다음으로는 카이스트라는 목표. 물론 목표를 전부 이루긴 했지만 그 목표를 간절히 원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그래서 그 사이, 목표를 새롭게 잡는 그 시기를 낭비하는 거다. 너무 애처로운 삶이다. 목표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목표를 새로 잡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목표지향적인 삶은 늘 불안하다.
아래는 얼마 전 있었던 입학식에서, 총장님께서 하셨던 연설이다.
"여러분들은 이제 성인입니다.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으세요. 실패해도 좋습니다. 휴학이 필요하다면 휴학을 하세요. 1년이든, 2년이든, 10년이든 상관없습니다. 아예 돌아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카이스트에 입학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여러분을 인정할 것입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열심히 탐색하고, 도전하세요. 카이스트는 여러분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그걸 찾는 걸 이번 년도의 소소한 목표로 잡기로 했다. 바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동안 달려온 것 만으로도 너무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며 조금은 느긋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될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다양한 것에 도전하고 탐색하려 한다.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보고,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보고, 울고 웃기도 하며 새내기 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1년 뒤에 내가 이 글을 보았을 때, "1년을 보람차게 잘 보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롭게, 하지만 뜻깊게 1년을 보낼 계획이다.
나는 늘 자유로운 삶을 원했지만 막상 그 자유로움이 내 하루를 가득 채울 때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혼자 붕 뜬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유로움을 바라면서도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중적인 상황에 스스로를 계속 가두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1년은, 자유로움에 다가가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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