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걸 좋아해 종종 서점에 가곤 했다. 비록 전공은 화학이지만, 꼴에 스스로 문학소녀라는 자만을 가져서일지도 몰랐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서점에 간 것이 꽤 오래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그동안 '읽음'이라는 행위를 시작하는 것 자체에 귀찮음을 느꼈던 것이다. 막막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무작정 주변에 보이는 서점에 들어갔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 고민만 한참 하다가, 시작이 쉬운 책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행처럼 떠도는 그런 책들.
그러다 발견하게 된 것이 한 작가의 「시한부」라는 책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지나가듯이 보았지만, '중학교 2학년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수식언이 뇌리에 남아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읽음에 아직 익숙치 않았던 터라, 심지어 시간도 많지 않았음에 두께를 보고 선택하진 않았다. 대신, 좀 더 짧은 단편소설인 「윤슬의 바다」라는 책을 택했다. 책을 피고, 첫 장, 두 번째 장... 차례로 읽어내려가던 나는 차마 더 읽을 수가 없어 책을 덮고 말았다.
"좋아해."
고백이었어. 아주 시시하고도 평범한 여느 남학생의 고백 같은 그런 거. 하지만 그 유치한 사랑 놀이에 푹 빠져 있던 나는 분별력이 없었고, 결국 이런 비극까지 오게 된 거겠지. 이것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려나? 우리 시작은 좋았던 거 같은데. 완전 미쳐서 서로밖에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 유치한 때가 제일 좋았던 거 같아.
_(중략)_
우리가 그때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일은 없었겠지. 그래도 자주 그리워. 아름답던 그 시절.
일기장을 덮었다. 요즈음 내 일기는 과거의 이야기들로만 가득하다. 그야 지금의 우리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는 게 더 나은 일이었다. 내 앞엔 다리가 부러진 채 누워 있는 너뿐이라. 내 시간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소름 끼칠 정도로 적막한 고요 속이었다. 혹시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네가 죽으면 어떡해.
일주일째다. 이 무서운 고요가. 네가 죽지 않을 거란 건 잘 안다. 그저 죄책감이다. 왜 네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내 능력은 너를 위해 써야 의미 있는 건데,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그건 겨우 이 주 전의 일이다.
-「윤슬의 바다」中에서 -
다시 읽으니까 그나마 괜찮은지도.
다른 사람들은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만, 내 경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유치하다'였다. 인스타그램의 감성 글귀에서나 볼 법한 문체들. 읽다보면 손이 조금씩 오그라든다. 그 글들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런 글들을 좋아하고, 다이어리에 끄적여두곤 하니까. 문제는 나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2학년, 겨우 15살짜리가 이런 글을 쓴다니. 그리고 난 깨달았다.
그 문체는 내가 평소 좋아하던 문체였다. 유지원, 정 같은 시인들의 문체. 멋도 모르고 그런 문체들을 따라 해보려 했었고, 그 무수한 시도들이 내 블로그 임시저장 칸에 흉터처럼 남아있었다. 나도 갓 스물밖에 안된 나이에, 그런 글들을 단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따라해보려 했었던 거다. 그거야 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패션 문학'인게 아닐까. 다른 책을 골라 읽으면서도 그런 나 자신을 반성했다. 따라하는 건, 정답이 아니었던 듯하다. 정확히 독자에게 무언갈 전하기 위해 사용한 게 아니라, 단지 분위기를 위해서 쓰인 글들이었다. 확실하게 느낀 건 그동안의 나는 보여주기식 글쓰기를 했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는, 얕은 식견이나마 그 작가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내가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다. 확실하게 느낀 건 그동안의 나는 보여주기식 글쓰기를 했다는 거다. 책의 붙임날개에 쓰여진 구구절절의 서평들을 보면, 내가 아직 한참 부족해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오랜만에 책을 들어 마음 속 낭만이 부족해졌을 수도.
책의 장점이 이런 것인듯 싶었다.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져서 이렇게 자리에 앉게 된 거다. 오늘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저 책을 보면서는 '과연 내가 이 책을 평가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그래도 비판은 자유니까. 문득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비판적으로 읽기' 단원이 생각났다. 또, 뒤늦게 든 생각은 내가 책을 쓴다면 저 작가보다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요즈음 느끼는 것이지만, 글을 쓴다거나 말을 할 때 단어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문제가 크다. 그래서 그런가 글을 써도 쓴 것 같지가 않다. 뻥 뚫리고 속이 후련한, 예전에는 그런 느낌이 선연했던 것 같은데 최근들어서는 그런 느낌을 느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쓰면 쓸 수록 더 답답해져 가는 느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턱이었다. 이게 아마 읽기의 결손 때문이겠지, 싶었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글을 더 잘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쓰고,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 본다는 것은 어느 측면에선가 성장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싶었다. 더 고민하고, 더 쓰면 더 발전한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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