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5.
김유정 - 만무방
벽과 알, 선생님께서 2학년 수업을 시작하시기 전에, 모든 소설은 ‘알’의 편에 서 있다며 가장 먼저 우리에게 소개해주셨던 이야기이다. 알은 항상 벽에게 억압당하고, 벽에 의해 고통받는다. 알은 그런 벽을 쳐서 부수려 하지만, 늘 부서지는 것은 자신이다. 우리 사회에서 알의 편은 거의 없지만, 소설가들은 이 ‘알’의 이야기를 ‘알’의 편에서 써 내려간다.
이 만무방이라는 소설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 나는 이 생각 공책을 통해 만무방이라는 이야기를 벽과 알의 이야기로 재구성해보려고 한다. 사실 처음 이 소설을 보게 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응칠이가 나쁘다, 못됐다’는 생각이다. 아우인 응오를 쓰러질 때까지 때리고, 도박이나 하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이 응칠이의 입장에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응칠이가 마냥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응칠이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응칠이는 사실 정말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만무방이긴 하나, 더 나쁜 것은 바로 사회 구조이다.
응칠이는 과거 빚 때문에 아내와 젖먹이 아기와 헤어지고, 자신의 옷가지와 재산들을 모두 빚쟁이에게 내놓은 적이 있다. 응오가 추수를 하지 않는 이유 역시 추수를 하자마자 세금과 빚을 내는데 모두 빼앗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벼를 자신이 훔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응칠이는 이런 응오가 안타깝고 답답해서 쓰러질 때까지 응오를 팬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응오와 응칠이가 만무방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빚과 수탈로 가득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우리는 더 이상 응칠이와 응오를 비판할 수 없게 된다.
응칠이와 응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알들은 결코 벽을 넘거나 부술 수 없었지만, 현재의 우리는 결국 선조들의 노력 덕분에 벽을 이긴 알들(존재할 수 없으나 우리는 존재하고 있다)이 되었다.
(우리가 벽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결국은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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