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5.
박지원 - 허생전
이번에 허생전에 대한 발표를 들으면서, 북학파로 잘 알려진 박지원이 사실 북벌론을 주장했다는 것과, 이야기 속 허생이 신분제에 갇혀 있었다는 한계를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던 주장이었는데, 알고 보니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들이 많이 존재했다. 특히 홍길동전과 비교를 하는 과정에서 이를 더욱 느낄 수 있었다. 허생은 실천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허생이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고(신분제적 질서를 타파하고) 북벌을 실천했다면 어땠을까? 먼저, 허생이 변씨에게 돈을 빌릴 때를 생각해보자. 허생은 선비와 장사치를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빌리고 나서도 감사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나중에 돈을 갚을 때에도 10배의 값을 쳐 돌려주며 자신은 ‘당신과 같은 장사치가 아니라 돈이 필요없다’고 말한다. 허생은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돈을 밝히는 것은 선비가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허생이 선비라는 신분제적 질서에서 벗어났다면, 허생은 돈을 많이 불린 후 그 돈을 바다에 버리는 멍청한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돈을 아내에게 들고 와, 최소한 아내가 먹을 것이라도 사 들고 집에 돌아가지 않았을까? (근데 그렇게 되면 허생이 원래보다 더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으로 변해버릴 것 같긴 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시험들을 아예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허생은 돈을 버는 것 자체를 선비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섬에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갔을 때도 글을 아는 사람들을 다 데리고 나가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의 문명을 건설할 수 있도록 배를 불태우는 짓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허생이 실천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이대장에게 3가지 방책을 알려주고 나서, 홀연히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북벌을 위해서 스스로 노력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신분제적 질서는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 와서 한계라고 느껴지는 것뿐이다. 다만, 그 시대에서도 역시나 홍길동전과 같이 신분제적 질서를 타파하고 실천을 이뤄낸 소설들이 존재하기에 이것이 한계로 느껴지는 것뿐이다(물론 홍길동전 역시 완전히 신분제적 질서를 탈피한 것이라고 평가받지는 못한다. 홍길동이 만든 율도국 역시 하나의 작은 조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실천력의 경우 허생은 말로만 북벌을 말하는 사람들을 꾸짖으며 정작 자신도 북벌을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백히 한계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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