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

나는 늘 자유로운 삶을 원했지만 막상 그 자유로움이 내 하루를 가득 채울 때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혼자 붕 뜬 것만 같아서.

배움/문학

[study #22] 왜냐 선생이 허생전을 통해 가르치고 싶었던 것들

se._.os25 2024. 9. 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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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5.

최시한 -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 이 글은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음을 알립니다. *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은, 단순히 가볍게 볼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독자도, 이야기 속 화자도 무겁고, 어둡고,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한 느낌을 받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게(읽어나가게) 된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그리고 왜냐 선생님의 이야기. 이야기 속 왜냐 선생님의 삶(그리고 행동들)을 통해 우리는 허생전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왜냐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말, 더 나아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는 소설 마지막에 생각한다. ‘왜냐 선생의 허생전 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말은 실체가 아니다, 하나의 도구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완전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없다. 모순적이다.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도, ‘컴퓨터라는 단어로는 실체를 다 담을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 선생이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소녀인 경미를 마음대로 ‘K’라고 부르고, K에 대한 혼자만의 환상을 갖고 있다. K는 이경미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말이 실체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경미와 실제로 이야기해보며 비로소 이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K를 완전히 지운다. 말은 실체가 아니구나. 환상에 불과한 것이구나.

전교조에 가입해 홀로 투쟁하는 왜냐 선생은 영웅이며, 투사이다. 윤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나는 왜냐 선생을 지지하지만, 정작 왜냐 선생님을 위한 행동은 하지 못하는 허생이다. 왜냐 선생은 이러한 허생을 비판하셨다. 그렇다는 것은, ‘실천하지 않는 나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윤수 덕분에, 나 역시도 실천력이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왜냐 선생의 허생전 수업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 두 가지를 꼬집고 있다. ‘알의 편의 설 용기’, 그리고 말은 실체가 아닌, 도구인 것’.

교감 선생님과 남자에게 끌려간 왜냐 선생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허생 역시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나, 왜냐 선생은 허생처럼 진 것이 아니다. 왜냐 선생은 사회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았다. 이에 맞서 싸운 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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